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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녕하세요

by meehwa로리 2026. 1. 28.

윤청의 어머니인 효성인황후는 만주족 최고의 명문가이자 정황기 출신으로 당시 보정대신이었던 허셔리 소닌의 손녀이다. 효성인황후가 궁에 들어간 후 강희제는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이미 윤청 전에 아들인 승호(承祜)를 두었으나 요절하였다. 삼번의 난으로 뒤숭숭하던 1674년(강희 13년), 효성인황후는 윤청을 낳은 뒤 난산으로 곧바로 붕어하였다. 이에 크게 상심한 강희제는 효성인황후에게 주던 사랑을 윤잉에게 모두 쏟아부었고, 실제로 윤잉은 강희제의 자식들 중 강희제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. 뒤이어 유학을 숭상하던 강희제는 내란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청 제국의 결속과 안정, 그리고 황실에 대한 신민들의 충성을 고무하기 위하여[3] 이듬해인 1675년(강희 14년)에 효장태황태후와 인헌황태후의 명에 따라 윤청을 황태자로 책봉하고 정전인 태화전에서 황태자 책봉식을 거행하였다. 당시 강희제는 황태자를 책봉할 때 이러한 성지를 내리며 사면령을 내렸다. “ 황제가 이르노니, 하늘의 뜻을 이어받고 백성을 다스릴 줄 아는 옛 제왕들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태자를 세워 나라의 근본을 탄탄히 하여 종묘와 사직에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다. 짐은 오랫동안 이에 대해 심사 숙고하였다. 열성조의 뜻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이 중대하나 경사스러운 당부를 하노라. 적장자 윤잉은 날마다 영민해지며 그 순수함을 더욱 보여주고 있나니 태황태후마마와 황태후마마의 영을 받들어 전례에 따라 종묘, 사직, 천단, 지단에 제를 올린 후 강희 14년(1675년) 12월 13일 윤잉을 황태자에 봉하오니 동궁에 거처하게 하며 만년을 이어갈 황통을 중히 여기며 사해와 천하의 마음을 잇도록 하라.

[4][5] ” 청 제국 역사상 황제가 황태자를 공식 석상에서 책봉한 일은 이 사례가 최초이며 유일한 경우이다.

[3] 강희제는 윤청을 황태자에 책봉하고 난 후 제왕학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. 실제로 윤잉은 머리가 총명하여 4살 때 천자문을 떼고 7살 때에는 사서오경을 다 암송하였다 하며

[6] 줄곧 아버지가 내려주는 어려운 공부와 과제를 금방 끝내고 모두 맞추는 등 강희제와 윤청을 가르치던 스승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. 강희제는 특히 박학홍유(博學鴻儒) 출신으로 학식이 높기로 유명한 대신 이광지(李光地)를 태자의 스승인 태자태사로 삼아 윤잉을 지도하였다. 윤청에게 제왕의 싹이 보이자, 강희제는 윤청에게 황제만 입을 수 있는 황포를 입도록 허용하고 자금성 어디에서든 가마와 말을 탈 수 있게 해주었으며 새로 동궁인 육경궁(毓慶宮)을 지어서 그곳에 기거하게 하였다. 1686년(강희 25년) 강희제는 여러 학사들을 초대하여 윤청에게 유교 경전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는데, 윤잉은 이내 한어, 만주어, 몽골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고 유교 경전의 중요한 구절을 모두 외울 수 있었다. 정무로 바쁜 강희제는 틈이 나면 윤잉에게 제왕학을 가르치는 등 윤잉이 다음 황제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도와주었고 기대하였다.